2021-05-03
2020-12-02
2020-09-16
2020-09-04
가 을
쓴 소주 한잔을 들이킨 것 같은 쓸쓸한 상반기가 지나고,
그 쓴 맛이 절정에 이르던 여름을 끝으로
이제 걸쭉한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나는 가을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낄낄대는 즐거움은 누군가에게는 분노로 다가왔지만,
그 뜨거웠던 여름의 태양도 이제는 따사로움으로 느껴지듯이
시간은 우리를 익숙하게 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게 합니다.
나의 작은 표정과 행동 또한 누군가에게는 괴로움일 수 있겠기에
먼 훗날 나 또한 용서받게 되기를 바라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세상 모든 것을 바라봅니다.
태풍이 지나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언젠가 밝은 태양이 떠오르듯이
언젠가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환하게 웃을 날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올해 가을은 모두 용서하고 용서받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2020-08-27
비가 되어 내리리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른다.
비가 내린다.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에 그녀의 모습이 아롱지며 사라지면
다음 생애 나는 비가
되리라!
온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비가 되리라!
어딘가 있을 그녀를 촉촉히 적셔주는 비가 되리라!
비가 되어 메마른 그녀를 적시리
촉촉히 적시리
나는 비, 그녀를 적셔주는 비
나로 인해 메마른 그녀가 젖을 수 있다면
나는 스러져 바닥의 흙탕물이 될지언정 그녀를 촉촉히 적시리
흥건히 적시리
그녀가 젖는다.
그녀가 젖었다
나로 인해 그녀가 젖었다.
내가 그녀를 적셨다.
비가 되어 내리리
그녀에게 내리리
그렇게 내리리
하염없이 내리리
2020-08-03
미련 그리고 비애
내가 종이를 찢는 것은
종이를 아프게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저 종이가 이제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필요 없어 버려질 폐지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 내 흔적이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
갈갈이 찢어 없애 버리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 의해 찢겨 지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저 내가 필요 없어졌을 뿐이라는 것을
필요 없는 사람은 그냥 버리면 그만인 것을,
이렇게 갈갈이 찢어 발겨 놓는 것은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기 때문이겠지!
더 망가지기 전에,
이름 모를 화장실에서 휴지로라도 쓰여질 수 있을 때
미련 없이 그리고 후회 없이, 뒤돌아 보지 말고 가야지!